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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더 패키지라는 드라마를 너무 잼있게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프랑스의 배경과 사랑스런 대사들이 마음 뭉클했습니다. 오늘은 더 패키지에 나온 프랑스 정보를 모아보았습니다. 해외휴양지로 떠나고 싶은 프랑스로 떠나 봅니다. 


샤를 드골 공항

샤를 드골 공항은 프랑스의 가장 훌륭한 지도자로 평가받는 샤를 드골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지었습니다.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때 4년동안 독일 식민지시대를 겪었는데 드골이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가장 먼저 한일이 나치에 협력했던 인물을 색출한 것이라고 합니다.


개선문

파리에는 총3개의 개선문이 있는데 1차개선문은 루브르박물관쪽에 있는 카루젤개선문, 2차는 에투알개선문입니다. 개선문아래에는 1차세계대전때 희생된 무명용사의 무덤이 있는데 이 무덤은 만들어진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불이 꺼진적이 없고 단 하루도 꽃이 시든적이 없습니다. 모두들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3차개선문은 라데팡스쪽에 있는 그랑아슈입니다.


샹젤리제거리

프랑스를 대표하는 쇼핑의 거리이자 명품의 거리로 원래는 왕궁소유의 사냥터였고 90년도까지는 브루조아들이 있던 곳이라 청바지차림으로는 들어갈 수 없을정도로 고급문화의 대명사였어습니다.


퐁네프의 다리

16세기 중반까지 세느강의 다리는 2개밖에 없었습니다. 다리들이 너무 낡고 북적거려서 새로 지은 다리가 퐁네프입니다. 프랑스어로 퐁은 다리 네프는 새롭다라는 뜻으로 새로운다리라는 뜻입니다. 지금은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퐁네프의 연인들 주인공들이 있던 바로 그 곳입니다. 남자는 부랑자고 여자는 시력을 잃어가는 화가인 두 주인공의 사랑이야기로 영화 마지막 대사는 "아무도 내게 이별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어..." 세느강은 파리랑 루를 거쳐서 영국해협으로 빠져나가는데 총길이가 766km 평균수심이 8m 파리에만 37개의 다리가 있고 대부분 강으로 바로 흘러갈 수있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몽마르뜨

몽마르뜨는 파리 외곽마을이였다가 1870년대에 파리로 편입되었습니다. 주세,면세지역으로 지정된 이후에 가난한 사람들도 몰려들고 유흥가로 번창하게 되었는데 현재는 물랑루즈 등 캬바레들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9세기에는 마네, 모네, 고흐, 세잔, 피카소 등 가난했던 인상파 화가들이 몰려들어 그림도 그리고 팔기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던 곳 입니다. 현재에도 그 후배들이 활동하고 있어 세기를 지나도 변하지 않는 예술의 거리가 되었습니다. 이 곳에는 샤크레쾨르성당이 있는데 파리 코뮌항쟁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어졌습니다.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아야 소피아성당에서 따온 비잔틴양식입니다.


노트르담대성당

18세기말 프랑스혁명때 많이  파괴가 되었고 19세기 초까지 황폐한 상태로 방치되었는데 너무 흉물스러워서 도시계획자들이 철거를 고려했습니다. 그때 대성당의 전통을 지키려는 소설가가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때 나온 작품이 '노틀담의 곱추' 원제는 파리의 노틀담이였습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하나로 대성당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성당을 지키려는 시민 모금운동까지 벌어져 결국 성당은 개축하게 되었습니다.  광장 앞에는 '포인트제로'가 있는데 이 곳을 밟으면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는 전설이 있는 곳입니다.


오베르

오베르는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인 네덜란드 화가 빈세트 반 고흐 무덤이 있는 작은 마을 입니다. 헤이그에있는 구필화랑에 다니다 프랑스지사로 발령되었으나 회사를 그만두고 화가가 되었습니다. 고흐가 그린 '가시밭 길 초상'이라는 그림은 한국돈으로 580억원에 거래가 되기도 했는데 사실 반 고흐는 살아생전 자기그림을 단 하나밖에 팔지못한 가난한 화가였습니다. 죽고나서야 인정을 받았습니다.오베르는 볼 것이 많지 않아 보통 패키지 코스에 안넣지만 사색 할 수 있는 좋은 곳입니다. 이 곳에 오베르교회가 있는데 교회 안에 노트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 소원을 적으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고흐를 사랑해주거나 인정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고흐를 사랑한 여자도 없었고 그의 그림을 사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자살을 할 때까지 고흐는 지독하게 외로웠습니다. 자기귀를 자를정도로. 오로지 빈센트 반 고흐 동생이 테오도르 반 고흐만이 있었습니다. 둘은 편지를 엄청 주고받았습니다. 형은 매일 '힘들다..용기를 줘...나 잘하고 있는거야...'

동생은 '형이 최고야...기운내...너무 잘하고 있어' 동생은 끝까지 반 고흐를 응원하고 믿어줬습니다.

이 곳에는 고흐의 그림 '까마귀 나는 밀 밭'의 배경이 된 곳이 있습니다. 사람이 없어 소리지르기도 좋은 한적한 곳입니다.

몽셀미쉘수도원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성처럼 보이지만 수도원입니다. 중세 순례자들은 천상의 예루살렘이라 칭했고 레미제라블을 쓴 빅토리위고는 이집트 왕의 피라미드에 버금가는 바다의 피라미드다 찬양을 했습니다. 아름다운 성을 볼수있는 장소 중 한 곳이 파노라마댐입니다. 수도원쪽으로 하루에 2번 씩 바닷길이 열리는데 자꾸 모래가 쌓여서 환경보존차원에서 파노라마댐을 건립했다고 합니다. 몽셀미쉘 수도원은 1300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프랑스와 영국의 100년전쟁 동안 영국군에게 점령당하지 않은 유일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프랑스사람들에게 성지중에 성지이자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성당꼭대기에 보이는 동상은 대천사 미카엘동상입니다. 미카엘은 오베르 주교 꿈에 나타나서 이곳에 수도원을 지으라 명령을 했고 주교는 그냥 꿈이겠거니 했는데 또 꿈에 나타났고 3번째 꿈에 나타났을 때는 손가락으로 이마를 지긋이 눌렀는데 그 손가락에서 광채가 나와 꿈에서 깨었다고 합니다. 신의 계시와 인간의 믿음이 만난 가장 아름다운 결과물인 곳입니댜. 프랑스는 조상 잘만나 살기좋다고 하는데 사실은 후손을 잘 만난겁니다. 작은거 하나까지 지키고 보존하려는 후손들의 의지가 지금의 프랑스를 만들었습니다. 재개발, 재건축, 도시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파괴하거나 과거를 파묻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 곳은 나폴레옹 3세때 복원사업을 시작했는데 그때 플라드라는 여성쉐프가 스플레오믈렛을 팔기 시작했는데 엄청나게 유명세를 타면서 이 곳 특선요리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세계적인 요리가 되었는데 128년 전 그 복장, 그 방법대로 직접만들고 있습니다. 베르트라노 기사의 집이 있는데 지금으로치면 장군의 집인데 중세시대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베르트라노기사 부인은 점성술사였습니다. 남편이 전쟁에 나가기 전이면 점을 쳐서 승리를 예견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매드맥스에도 정조대가 나오는데 남편이 전쟁에 나갈 때면 절대로 바람을 못피게 방지하는건데 남편이 떠나자 마자 열쇠공을 불러 풀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맞은편 통블랜 섬은 프랑스와 영국이 백년전쟁을 벌일 때 영국군 주군지역으로 지금은 철새도래지로 지정되어 있어서 관광편의시설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물길이 열리는데 잘못들어가면 밤새 갖혀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로맨스가 탄생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연인들의 섬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생말로

생말로에는 17세기부터 켈트족이 살았습니다. 갈리아족,골족이라고도 불리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해적들이였습니다. 인간의조건을 쓴 작가이자 전 문화부장관인 안드레 말로는 생 말로를 보고 만약 내 인생의 시간이 일주일만 남았다면 그 시간을 여기서 지내고 싶다고 얘기했다고 할 정도로 별로 특별할 건 없지만 머물수록 떠나기 싫은 곳입니다. 그러나 알고보면 해적들의 도시이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뒤로보이는 성이 생 뱅상 성인데 12세기에 군사시설로 지어졌습니다. 2차세계대전 때 독일진군을 막느라 7~80%완파가 되었는데 전쟁이 끝나고 복원작업을 거쳐서 17세기 모습 그대로 재연을 해놓았습니다.


옹플뢰르

백년전쟁 때 전쟁의 전초기지였던 곳으로 굉장한 요새였습니다. 신대륙으로 떠나는 탐험가들의 출항지이기도 합니다. 화가들이 아뜰리에를 벗어나 햇빛 아래로 나온 곳이기도 합니다. 옹플뢰르는 전쟁의 도시로 백년전쟁 때 프랑스와 영국이 치열한 전쟁을 벌인 곳입니다. 바로 옆이 영국해협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탐험가들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1608년에 탐험가 사무엘 드 생프랑은 여기서 출발해서 퀘벡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 이후로는 에술의 도시가 되었는데 외젠부댕이라는 화가는 햇빛이 너무 좋아서 밖에 나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림은 보통 아뜰리에(작업실)에서 그렸었습니다. 이 곳에 생카트린 성당이 있는데 프랑스에서 가장 큰 목조성당이입니다. 지붕은 배를 거꾸러 해놓은 모양인데 15세기 조선기술자들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간결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이 곳의 특산물은 포도가 자라지 않아 사과로 와인을 만들었는데 바로 사과와인이 유명합니다.


도빌

도빌은 바닷가휴양도시입니다. 몽프뢰르는 사색에 잠기는 바다라면 도빌은 사랑에 빠지는 바다입니다. 도빌은 작은 해변마을이였는데 1861년에 나폴레옹3세의 이복동생인 모니공작이 개발을 주도했는데 목적은 단 하나 부르조아들을 위한 프랑스 최고의 명품휴양도시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골프, 승마, 폴로, 카지노, 요트 등 휴식과 오락을 함께 할 수 있어 유럽의 부호들이 즐겨찾는 곳이었습니다. 지금도 상류층의 사교클럽 등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 곳에서 유럽귀족들이 모여 사교행사를 갖는 곳이기도 했는데 화단들이 많아 꽃으로 수놓은 해변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명품휴양도시답고 명품쇼핑을 빼놓을 수 없는데 반목조형태의 빌라들이 지금은 명품샵으로 바뀌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코코샤넬'이란 영화를 찍은 배경이기도 하는데 명품거리의 상징과도 같은 곳입니다. '007카지노로얄'이라는 영화를 촬영한 명소이기도 합니다. 프랑스에서 영화제라면 깐느를 떠올리지만 어쩌면 도빌이 영화와 가까운 도시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매년 9월에 열리는 미국영화제는 40년이 넘었고 1999년 부터는 국제아시아영화제도 개최하는데 유럽에서 유일하게 아시아영화만 모아서 상영하는 영화제입니다. 이 곳 도빌의 해변에서 영화 '남과 여'를 찍었는데 사고로 남편을 잃은 여자와 부인이 자살한 남자가 상처를 가진 남과 여가 만나 사랑을 하고 이별을 했다가 다시 만나는 영화입니다. 프랑스에서 대표적인 바캉스는 3개인데 섬머바캉스, 크리스마스 전후로 노엘바캉스, 2월 스키바캉스가 있습니다. 썸머바캉스는 1달정도 이어지는데 여행지로 떠나는 행렬이 우리나라 명절같아서 그것을 그랑 데파르라 부릅니다. 공공기간도 단축근무를 하고 상점도 문닫는 곳이 많은데 아무도 경제걱정은 안합니다. 즐겁게 쉬어야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걸 알기때문입니다.  또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3대 휴양지가 있는데 지중해와 만나는 니스, 야수파화가를 길러낸 생트로페, 영화같은 해변 이곳 도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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