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2의 첫 여행지는 안동이였습니다.
안동의 헛제삿밥
언제든 점심부터 먹고 시작, 안동하면 유명한 헛제삿밥과 안동찜닭을 추천을 했는데 점심은 월영교 앞 헛제사밥집으로 갑니다. 저는 제삿밥을 식당에서 판다는 걸 처음알았습니다. 헛제삿밥은 안동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간고등어까지 함께 나온다고 하니 딱입니다. 특히 저는 고추장을 썩 좋아하지 않는데 간장만 살짝 넣어 나물의 맛을 살린 비빔밥이라 하니 딱 내 스타일인 음식입니다. 비빔밥 나물도 제사음식처럼 다 볶아서 나오고 하나하나 붙인 전들까지 아시다시피 제사음식이 은근 손이 많이가는 음식인데 식당에서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합니다. 이 외에 상어고기,산적,간고등어,떡과 약과, 인동식혜까지 맛 볼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남은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하려 음식장사를 시작했는데 50년대 시장에서 팔던 제삿밥이 생각나서 팔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특히 경상도에서는 제사상에 돔베기라고 불리는 상어고기가 올라가는데 경상내륙이은 산맥에 막혀 교통이 좋지 않았는데 상어나 홍어는 피부나 체내에 요소가 있고 이 요소는 삭히면 암모니아로 분해가 되어 다른 균들이 붙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부패가 일어나지 않아 상어고기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라도의 홍어나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월영교와 원이엄마테마길
월영교는 안동의 랜드마크가 되는 곳으로 안동댐 아래 낙동강을 가로질러 있으며 교갹에서는 분수가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안동댐에서 흘러보낸 물의 수위를 조절하는 조정지역할을 하는 지역으로 월영교에는 안동댐건설로 수몰된 수몰된 지역에서 옮겨온 월영정이 있습니다. 지붕은 팔각형으로 지붕이 솟은 형태인데 그래서 팔각정이라고 합니다. 정자만 한쪽으로 모이는 지붕을 만든다고 합니다. 그 앞에는 원이엄마 테마길이있는데 그들의 사랑이야기가 담겨있어 연인들이 찾는 명소라고 합니다. 그 이야기는 금실좋은 부부가 있는데 원이 아빠가 병이들자 원이엄마는 머리카락으로 미투리를 짜며 병이 낫기를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원이아빠는 미투리를 신어 보지도 못한채 눈을 감자 원이엄마는 미투리와 편지를 담아 묻어주었습니다.
하회마을
잡학박사들이 모인 곳은 풍산 류씨 가문이 자리를 잡으며 시작된 하회마을의 화경당(북촌댁)입니다. 이 곳 하회마을은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전통과 문화가 존재하는 곳입니다. 엘리자베스여왕도 한국 방문시 안동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저녁상에는 특별한 날 안동상차림에는 문어숙회와 안동소주가 나옵니다. 하회마을은 마을의 모습이 잘 유지가 되어있는데 이는 물이 돌아가는 마을이란 이름처럼 지역조건상 씨족사회가 잘 유지가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곳에는 류성룡의 집인 충효당, 풍산 류씨 대종택 양진당 등이 있습니다. 대종택 양진당은 지을 당시 99칸이었다는 대갓집이없는데 이 곳에는 부엌의 문이 없습니다. 배고픈 사람들이 와서 기척없이 먹고 갈수 있게 베풂을 실천한 흔적입니다. 이 곳 화경당은 풍효당이나 양진당보다 재산이 많은 권력가 집 임을 알수있는데 이는 보의 두께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곳은 경회루 같은 곳에서 사용하는 수준의 보로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주택 보중 가장 크다고 합니다. 건축물 구조의 뼈대가 되는 부재가 똑 바른데 보통 우리나라는 소마무를 사용하는데 그래서 구불구불한 편인데 이렇게 바르게 하기 위해선 다 잘라내고 가운데 반듯한 부분만 사용해서 부를 상징한다고 보면 됩니다.
류성룡의 집 충효당과 징비록
25세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를하고 선조 세자시절 중안 장부에 진출합니다. 선조 즉위할 때부터 보좌를 하면서 30년넘게 선조밑에서 벼슬을 합니다. 영의정, 우의정, 좌의정 삼정승을 다한 관직왕으로 도체찰사로서 군무를 총괄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전 1591년, 이순신,권율장군을 추천한 사람이 류성룡입니다. 류성룡은 어린시절부터 이순신을 눈여겨보고 있다 종 6품 현감에서 정3품 전라죄수사로 7단계 초고속 승진을 시킵니다. 전란기간 중 명나라를 상대로 외교도 잘했고 이순신 장군을 죽이려 할때도 막아내는 등 7년간의 전쟁을 치러냈습니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장군이 돌아가신 날 파직이 되었는데 정치적 반대파의 견제로 사표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와 강 건너 부용대 및 정자를 짓고 이 곳에서 몇년에 걸쳐 전쟁에 대한 기록을 하는데 그것이 '징비록'입니다. 지난 시기의 일을 꾸짓는다의 의미인 '징'과 후환이 없도록 경계한다의 '비'를 의미합니다. 총 16권으로 전란이 생기기전 왜와 조선의 상태, 왜란이 생기기 전 조정의 상황, 전란의 진행 경위와 경과 특히 '한산도해전'에 대해서는 매우 자세하고 기록을 했고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까지 모두 기술을 한 책입니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라는 얘기도 이 징비록에 나옵니다. 그 뒤 열 몇 권은 공문서로 전란 중 조정에서 내려간 문서,현장에서 올라온 문서의 자료로 자신이 쓴 징비록인 사실임을 입증하는 자료입니다. 자신이 도체찰사 영의정으로 있으면서 전란 중에 취했던 제도개혁 조처에 대한 기술과 후기까지 16권을 완성합니다. 이 후 2권으로 편집 된 이후 일본,중국으로 퍼져나가며 국내보다 더 많이 읽혔습니다. 그리고 이 곳에서 나눈 대화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누군가와 함께 했기에 더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경우가 많은데 이 두 사람도 그런 경우라고 사람의 뇌는 나 혼자만의 뇌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며 "이순신이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믿어주었던 친구다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는 말이 와닿았습니다.
하회 세계 탈 박물관
하회탈을 비롯한 한국 각 지역의 전통 탈과 전세계의 다양한 탈이 있습니다. 특히 잡귀를 막고, 장수를 빌기위해 걸어두었다는 중국의 탈 탄구는 얼굴 안에 또 얼굴이 있는 형태로 신기해 보입니다. 이 곳에는 하회탈 각시탈 등 다양한 탈이 있는데 이는 양반을 놀려먹고, 선비를 비꼬기도 하는 탈을쓰고 마당극을 했는데 이를 공연했던 곳이 아이러니하게 양반집 마당이였고 사람들은 대청마루 등 앉아서 공연을 봤다고 합니다. 양반을 조롱하는 놀이를 양반집에서 하는 걸 어떻게 용납을 한걸까요? 1인칭으로 보는 나와 3인칭으로 보는 내가 다르기 때문에 본임임에도 제 3자로 뇌가 인지하기 때문이라고 요즘시대의 탈에 해당하는 것이 SNS프로필사진이나 닉네임인 것 같다라고 얘기합니다.
안동소주박물관
안동소주는 고려시대 원나라에서 소주제작법이 들어온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자연상태의 술의 도수는 14~15도 이하이지만 끓이면 기화한 알코올들이 찬그릇에 닿으면 다시 액체가 되어 모이는데 이렇게 해서 60~70도의 술이 나오고 서서히 물도 기화하면서 도수가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소주를 만들때는 불조절이 핵심이라고 합니다. 소주의 주 자는 술주가 아니고 세번빚은 술 주라 합니다. 안동소주가 유명한 이유는 이 곳에 대갓집이 많아 제사를 지낼때 소주를 만들어 사용을 하였는데 집에서 만드는 술을 가양주라고 합니다. 예를들어 안동소주,경주법주 등이 유명합니다.
병산서원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가 자리잡은 병산서원은 류성룡이 제자를 가르치던 곳으로 현재 류성룡의 위폐가 모셔져 잇습니다. 서원의 초입에는 만대루가 있는데 병풍처럼 둘러쌓인 산을 볼수 있습니다. 이 곳에 모여 제자들과 함께 공부를 하던 곳으로 궁궐에만 있을 법한 넓은 곳입니다. 그래서 아주 시원한 느낌을 받습니다.
도산서원
시냇가이되 분주하지 않고 바위틈에 숨어 살며 보탬이 되 수 있는 곳,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으로 현재 이황의 위폐가 모셔져 있습니다. 제자들을 가르치던 공간인 도산서당, 서원관리자들의 공간인 고직사, 제자들을 위한 기숙사 농운정사, 대강당으로 쓰인 전교당이 있습니다.
이 곳은 분지처럼 양쪽으로 산이 있습니다. 사실상 건축하기가 좁은 곳입니다. 건축학적으로 도사선원과 병산서원을 비교해 보면 도산서원은 이렇게 좁은 곳이라 더 넓어 보이기 위해 길일 꼬불꼬불하게 해서 시산을 지연시키는 방법을 이용합니다. 여러채들은 서로 담장이 나눠져 있고 복잡한 미로같은 모습입니다. 그렇게 해서 머릿속에 공간이 그려지지 않은데 그렇게 넓어 보이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황이 직접 설계를 하면서 디테일까지 신경쓸 정도로 건축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퇴계이황은 조선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성리학의 대가로 퇴계학파를 형성했습니다. 성균관 대사성 즉 국립대학 총장의 관직으로 79번 관직을 고사하기도 했습니다. 고봉 기대승이라는 젊은 학자와의 편지로 주고받은 학술토론은 8년에 가까이 이어져 왔는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구애받지 않고 조선 역사 상 가장긴 철학논쟁이 이어진 것입니다. 고봉 기대승은 (1527~1572)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호남의 성리학자로 32세 문과급제를 하고 18차례 경연에서 선조앞에 섞던 사람입니다.
"아랫사람이 내 권위를 무시하고 무례를 구하는 것이 싫으면 내가 먼저 그래야 합니다."
"임금은 이익을 독점하지 말고 반드시 백성과 그 이익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현자를 신임하지 않으며 조정에 있는 자는 독만 축낼 뿐입니다."
-고봉 기대승
하신 말씀을 반복하여 궁구해보고서 끝내 부합하지 않는 곳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기대승
그대의 논박을 듣고나서 더욱 잘못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고쳐보았습니다. -이황
처음 만나면서부터 견문이 좁은 제가 박식한 그대에게 도움받은 것이 많습니다. -이황
평생을 우러르며 그리워했는데 함께 논하고픈 생각이 구름처럼 쌓이고 말았습니다. -기대승
진정한 용기는 기세높여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고치는데 인색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황이 고개를 숙입입니다.
-양선생왕복서 (인간의 본성을 놓고 이황과 기대승이 벌인 논쟁으로 4번의 만남 8년간 120통의 편지를 주고받은 내용입니다.
만송정숲
하회마을 북쪽 강가에 위치한 오래된 소나무 숲으로 조선 선조 때 세찬 북서풍을 막기위해 조성한 방품림입니다. 1만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하여 만송정이라 불렀으나 현재의 숲은 100년전 다시 조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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