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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고 김삿갓문학관


저도 방랑을 꿈꾸는 사람으로 방랑시인 김삿갓은 부럽다면 부러운 인물입니다. 조선 후기 한시의 정형성을 파괴한 대표적인 시인으로 이름은 김병연입니다. 

내 삿갓은 정처없는 빈 배

한 번 쓰고 보니 평생 함께 떠도네

취하면 걸어두고 꽃구경

흥이 나면 벗어들고 달구경

속인들의 의관은 겉치레,체면치레

비가오나 바람부나 내사 아무 걱정 없네

                     -<나의 삿갓>


김삿갓이 한 곳에서 가장 오래 머물러 살았을때가 '가련'하고 살았을 3년이라고 합니다. 

가련행색가련신 가련문전방가련 (가련한 행색의 가렴한 몸이 가련의 문엎에 가련을 찾아왔네)

가련차의전가련 가련능지가련심 (가련한 이 내 뜻을 가련에게 전하며 가련이 이 가련한 마음을 알아주겠지)

                                                                                                - <가련기시>

김삿갓은 왜 방랑을 하며 살았을까? 영월군에서 주최한 영월도호부 과거(백일장)에서 시제가 홍경래 난때 반란군에 맞서싸우던 관리와 반란군에 항복한관리의 행위를 비교해서 논하는 것이였는데 거기서 1등을 했는데 그 내용이 반란군에 항복한 김익순을 맹렬히 비판을 했는데 그 김익순이 감삿갓의 할아버지였습니다. 유교에서는 효가 도덕의 근본인데 할아버지를 공개적으로 모욕했기에 평생 방랑을 하며 살것이다 라는 하나의 해석이 있습니다. 또다른 해석은 이문열작가의 '시인'이라는 소설에서 그 소설의 주인공이 김삿갓이였는데 김병연은 할아버지의 일을 알고있다는 가정으로 글을 썼는데 알았으므로 내적 갈등이 더 컷을 것입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체제에 맞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사북탄광문화촌


광부와 주민들이 보존 위원회를 설립한 후 2004년 폐광된 동원탄좌 부지에 노동자들이 사용했던 풀품과 장비, 시설들을 그대로 보존 중인 곳입니다.이 곳에서는 옛 갱로 들어가는 열차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대부분을 생산을 했던 곳입니다. 사진에 여성들도 많은데 '선탄부'라 하여 막 채취한 석탄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었고 이들은 남편이 광산에서 사망을 하자 계속 가정을 꾸릴 수 잇게 탄광에서 남편을 잃은 여성을 선탄부로 채용을 한 것이라고 합니다. 앞쪽 산처럼 보이는 언덕은 터널에서 꺼낸 폐석이 40년 가까이 쌓여져 이루어 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전혀 알지 못했던 역사적인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1970년대, 석탄산업은 활기를 띄었지만 실상 노동자들의 생활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산업성장에 비해 지금히 낮았던 임금과 불합리한 노동조건들로 1980년 4월 21일 노동항쟁을 일으키는데 이를 '사북항쟁'이라 합니다. 그런데 뉴스는 그들의 폭력으로 한국이 무정부 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도를 하며 신군부의 계엄령확대와 국회해산으로 이어졌는데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용으로 이용이 된 것입니다.


또한 이 곳의 석탄사업은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는데 이 석탄으로 산업화에 불붙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대통령 선물로 받은 의류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감증이 있는데 신분증 역할도 하면서 사북 어디서든 외상구입이 가능한 증명서였다고 합니다. 그 증명서엔 여성의 사진이 더 있는데 어머니거나 부인의 사진입니다. 이 후 1980년 후반이 되면 국제유가가 급락을 하고 무연탄 수요가 감소하면서 석탄산업은 후퇴하게 됩니다.


마지막 유시민은 이런 걸 다 잊어버리는 것은 너무 무심한거 같다, 다른세대와 다른 삶에 대해 왜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걸까? 라고 말하니 동선은 뇌가 항상 그렇게 하는 거라고 합니다. 아는 것에 기반을 두고 어떤 것을 빠르게 분류해 버리는데 사람에게는 굉장이 많은 면이 있지만 그래서 우리는 몇개의 면만을 보고 사람을 판단해 버리곤 한다고 합니다. 


청령포


이 곳은 3면이 강으로 둘러쌓인 천연유배지로 어린 단종이 머물던 곳입니다. 단종은 세종대왕의 장손으로 조선의 제6대왕입니다. 세종은 첫째아들 문종에게 왕위를 넘겼으나  즉위 2년만에 갑작스럽게 죽게됩니다. 그에 문종의 아들인 어린 단종이 왕위를 이어받는데 그때 나이가 12살입니다. 그때 세종의 둘째아들인 수양대군은 단종을 보위하던 신하를 죽여버리고 정권을 장악하는데 이를 계유정난이라 하고 단종은 이 곳 청령포에 위리안치 시켰습니다. 그리고 나서 2년 후 17세에 단종 복위운동이 일어났는데 단종 복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여섯인물을 사육신이라 합니다. 하지만 실패를 하고 화근을 제거해야한더는 이유로 단종에게도 사약이 내려집니다. 기록에는 사약이 내리자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고 합니다.

-위리안치: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둬 외부와 차단시키는 중죄인에 해당하는 강한 형벌입니다.

-사육신: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그는 무슨 한일이 있어 왕이 된것이 아니고 운명으로 왕이 되었을 뿐인데 삼촌에게 쫒겨나고 죽임을 당한 인물입니다. 수양대군인 세조는 정치를 잘하는 편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업적이 조선을 다스리는 기준이 된 최고의 성문 법전 '경국대전' 을 만들었습니다.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뺏지 않았다면 정조에 버금가는 정도의 왕으로 남을 수도 있었지만 세조는 남아있는게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단종이 많은 편입니다. 어쩌면 세조는 "저 어린왕이 대신들한테 휘둘려 왕권을 무력화하고,민생을 도탄에 빠트릴 위험이 있다. 내가 이 것을 막아야 되겠다."라는 마음이였을지 모릅니다. 그럼 세조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목적이 정당하다면 옳지 않은 수단을 써도 되는가? 이 것은 우리가 살면서 늘 부딪히는 목적과 수단에 관한 인생철학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의 대답은 어쩌면" 안된다!" 입니다. 그래서 제조에 대한 기억은 하지 않는 것일겁니다. 그래서 정당하다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옳지 않은 방법을 쓴 것에 대한 단죄이고 나쁜 방법으로 희생당한 추모적 의미로 이 장소들에 특정한 이름이 붙어서 기억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말을 유시민씨가 합니다. 역시 그의 통찰력에 빠집니다.


부석사

영월에서 30분 거리의 부석사로 떠난 현준씨, 부석사는 676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목조건물의 시초가 된 절입니다. 소백산 줄기의 울창한 숲을 따라 걷가 108계단을 더 오르면 마침내 만나게 되는 세계는 더 감성적인 상태로 만나게 되는 극락세계 무량수전입니다. 중요한 곳을 더 중요하게 만드는 건축적 배치라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는 공영주차장의 등장으로 예전과 같은 감동은 느낄 수 없다는 말을 합니다.이에 동선씨도 쾌락은 도파민이라는 신경정신물질이 관여를 하는데 도파민은 예측하지 못했을때 큰 보상이 온다고 합니다.


고씨동굴

총 3388M의 석회암동굴로 임진왜란때 고씨 일가가 거주 한 곳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620M정도 공개가 되고 있습니다. 영월군 김삿갓면 예밀리는 고씨 집성촌이였는데 그 사람들이 동굴로 피난을 갔는데 남편은 일본군이 들어오자 뛰어내려 자살을 했는데 실제 그 장소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라디오스타촬영지

영화의 촬영지이자 라디오 박물관과 같은 곳입니다. 1927년 한국최초 정규라디오 방송이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아날로그 감성과 같은 매체이고 현재는 팟켸스트나 오디오 북 처럼 조김씩 다른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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