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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여행지는 한반도의 약 9배 크기로 멕시코 시티는 해발1950m보다 높은 2250m 고산지대에 위치해 있습니다. 신화와 문명의 나라 그 안에서 공존하며 살아가는 멕시코 사람들을 만나고 애니메이션 <코코>로 친숙해진 정열의 나라 멕시코로 떠납니다. 공항에서 시내로 나갈때는 안전을 위해 나라에서 허가한 택시를 이용하는데 표는 공항에서 구입을 합니다.

소칼로광장

우리나라 고려 말에서 조선 초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던 15세기에 멕시코 북부 수렵민족 멕시카 부족이 정착지를 찾아 남하를 하는데 그 곳이 소칼로광장이었습니다. 그들은 기존의 있던 부족들과 충돌을 하지 않고 연맹을 맺었는데 그 연합체를 아스떼까라 불렀습니다. 이 들은 일을 한다기 보다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주변 작은 약소국을 정복해 조공을 받고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고 세력을 확장하지만 적을 많이 만듬으로서 아스떼끼기 멸망하는 촉매제로 작용합니다. 천문학등 발전하고 찬란한 문명을 가진 아스떼까지만 스페인 침입자들에 의해 파괴되고 유럽식 문화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 결과 한 공간에 아스떼까 문명과 서양유럽풍 건물들이 혼재되어 있는 곳입니다. 소칼로광장은 멕시코 정치와 문화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가는 길에 우측은 국립궁전(대통령궁)인데 2층이었지만 증축되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고 좌측으로는 메트로폴리탄성당이 있습니다. 광장 한 가운데는 대형국기가 있는데 멕시코국기 중앙에 독수리의 모양이 초록 뱀을 물고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멕시카 부족이 남하 중 지도자가 꿈에 선인장위에 독수리가 뱀을 물고 있는 곳에 정착을 하라는 계시를 받고 정착한 곳이 이 곳 떼노츠티틀란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초록은 독립과 대지를 하양은 순결과 통일을 빨강은 인종통합과 희생을 의미합니다. 멕시코시티는 호수를 매립해 지어진 건물이라 지반이 약해 많은 건물들이 기울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메트로폴리탄성당

소칼라광장 입구에 위치한 성당으로 짓는데만 200년(연산군 쫒겨날때 쯤 짓기 시작해서 임진왜란, 병자호란지나고 사도세자의 비극이 있는임오화변이 있던 시기에 완성)이 걸렸다고 합니다. 긴 건축기간인 만큼 많은 양식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 역사상 최고의 성당으로 국민 대부분이 카톨릭신자입니다. 

국립궁전(대통령궁)

1810년 9월 15일 이달고 신부는 독립의 종을 울리며 멕시코의 해방을 부르짖었는데 이 궁전의 종은 멕시코 독립운동의 아버지인 이달고신부가 울렸던 자유의 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매년 9월 15일 국립궁전에서는 종을 울리며 만세를 부릅니다. 식민지시절에는 이 곳은 스페인의 총독부였고습니다. 멕시코와 스페인은 300년 긴세월과 멀리 떨어진 거리감, 혼인정책으로 적대감이 별로 없는 편이라고 합니다. 민족이 60%가 스페인과 원주민 혼혈인 메스티소 10%가 유럽인 30% 원주민 인디오라고 합니다. 이 곳에서 멕시코의 천재화가들을 만날 수 있는데 프리다 칼로와 그녀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입니다. 500페소에 보면 앞뒷면에 그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디에고 리베라는 여성편력이 심해 엄청난 바람둥이 여서 처제와도 바람이 날 정도였다고 합니다. 프리다 칼로는 소아마비였는데 그 이후에도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는데 강철봉이 온몸을 짓이겨서 1년가까이 깁스를 하고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유일하고 손만 자유로웠고 천장에 설치된 거울때문에 유독 자화상이 많고 부서진 몸에 대한 그림이 많다고 합니다. 그녀는 죽기전 다리를 절단하고 마지막 유작을 남기는데  viva la vida 라는 작품을 남기는데 인생이여 영원하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신체의 고통과 사랑의 아픔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고 죽음의 문앞에서 "행복한 외출이길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길" 이라는 말을 남깁니다. 절망을 예술로 승화시킨 멕시코 대표 화가입니다. 코코에 나오는 강아지는 멕시코의 상징과 같은 털이 없는 개인데 궁전 내 그림속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국립궁전의 상징과도 같은 엄청난 규모의 벽화는 디에고 리베라의 대작입니다. 이 그림으로 뱀을 문 독수리, 이달고 신부, 농민혁명 지도자인 사파타 등 멕시코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도 있습니다. 스페인이 300년을 지배를 했는데 독립을 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와 아주 비슷한데 우리나라도 미국이 일본에게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것처럼 스페인도 나폴레옹이 쳐들어가면서 약해지자 이 혼란을 틈타 독립을 이끌어 내게 됩니다. 하지만 급격한 변화로 지주하고 농민들이 싸우기도 하면서 많은 혼란이 생기게 됩니다. 이떄 독재자가 등장을 하는데 포르피리오 디아스는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33년간 독재를하면서 정경유착 부정부패로 농민들은 송곳 꽂을 만한 땅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때  에밀리아노 사파타가 나타나는데  "토지와 자유"라는 구호로 남부 농민 혁명군을 이끌었고, 판초 비야는 북쪽의 농민 혁명군을 이끕니다. 이 두사람이 이 곳에서 만난 후 독재자를 밀어내는데 1910년 멕시코혁명시 솜브레로(전통모)와 판초를 입은 농민혁명군이 전진하는 모습이  바퀴벌레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라 쿠카라차'라는 노래도 나옵니다. 단 몇 줌의 흙을 위해  총을 들어야 했던 멕시코 농민의 애환이 담겨있습니다. 힘을 합쳐 독재자를 몰아내고 두 지도자가 나눈 이야기가 유명한데 지도자의 자리는 민간인에게 넘기고 우리는 다시 평원으로 가자는 얘기였습니다. 우리나라도 동학이 있어 북접 충청도 동학2대교주 최시형과 남접 전라도 녹두장군 전봉준이 만나 일본을 치러 가지만 일본을 몰아내진 못했지만 당시 농민들이 주장한 요구가 반영이 되서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철폐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국은 링컨대통령이 위로부터의 개혁이었지만 우리나라는 농민들이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이룹니다. 

템플로마요르

영화 코코의 배경이 된 '죽은자들의 날'은 죽은 이들이 가족을 만나러 오는 날인데 그래서 제사에 해골을 올리기도 하는데 길거리에서 해골모양을 많이 팔고 있습니다. 스페인 침략으로 인해 아스떼까문명은 땅속에 묻혀버렸는데 1978년 지하철공사중 유적조각이 발견되어 기적적으로 다시 만나게 된 아스떼까 문명이 템플로마요르입니다. 이 곳에서 신전의 터를 볼 수도 있고 미니어처로 지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호수 위에 떠 있던 섬도시로 당시 런던인구 5만명이였지만 이 곳에는 15~30만명이 살았던 멕시코 고원 최대도시였습니다. 신전의 모습도 미니어처로 재현을 해두었는데 비의 신전과 태양의 신전에서 제사를 지내고 전쟁포로들을 제물로 바쳤던 제단이 있습니다. 일부 의례에서 제물은 최대한 많은 피를 흘려야 한다고 믿었는데 태양의 신이 인간의 피를 먹고 산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인신공양이 신에 대한 성스로운 행위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경주 월성지구의 우물 속에서 어린아이 유골이 나오기도 하고 월성성벽 속에서 담사이에 사람을 끼어 쌓기도 했고  순장이라 하여 왕이 죽으면 신하와 궁녀들을 밥을 먹인 후 목을 매단 후 묻었는데 가부장적 신분사회가 빚어낸 비극적풍습입니다. 이러한 순장의 풍습은 초기 고대문명지역에서는 세계적으로 성행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5~100명정도 였지만 스케일면에서 차이가 있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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