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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드디어 대항해시대의 중심도시였던 세비야로 갑니다. 스페인의 4대 도시는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발렌시아, 세비야입니다. 그 중 세비야는 스페인에서도 손꼽히는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스페인의 황금시대를 느낄수 있고 이슬람문화와도 느낄 수 있으며 론리 플래닛 선정 2018년 놓치지 말아야 할 도시 1위가 세비야입니다. 세비야는 이슬람이 무려 800년을 지배하였기에 이슬람 문화가 많이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스페인광장



세비야 공항에 도착한 일행은 스페인 광장으로 갑니다.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은  스페인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손꼽히는 곳으로 이 곳의 랜드마크가 되고 있습니다. 


1929년 라틴아메리카 박람회장으로 설립이 된 이후 계속 발전을 했는데 반달모양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과 호수가 아름답습니다. 마차와 보트를 타며 둘러볼 수 있는 로맨틱한 관광명소입니다. 스페인 건물 곳곳에서 느껴지는 이슬람의 향기도 느낄 수 있습니다. 


▼▲ 이슬람풍 기독교 건축양식을 무데하르(Mudejar)라 부르는데 다른 유럽에서는 볼 수없는 유니크한 느낌의 건축물이 존재합니다. 


▼ <스타워즈2> 나부행성의 배경으로도 사용되었으며 아나킨과 파드메가 걸어 다니기도 했던 곳입니다. 



▼광장 곳곳에서는 음악과 탱고 버스킹공연을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대 관람포인트는 스페인58개도시의 후장과 지도를 모자이크한 타일벽입니다.  도시와 관련된 역사적인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이사벨1세여왕과 콜롬버스 이야기

스페인을 알려면 이사벨 여왕을 알아야 합니다. 그녀는 1451년생으로 이 시기는 우리나라 15세기 조선 성종시대입니다. 


그녀는 카스티야 왕국의 공주였고 이복 오빠 엔리케는 왕으로 즉위하자마자 왕권에 위협이 되었기에 이사벨 가족을 시골로 유배를 보냅니다. 그녀는 실성한 어머니를 돌보며 천민과 같은 가난 속에 살았지만 절망 속에서도 언제나 강인하게 버텼습니다. 결혼 적령기가 되자 엔리케 국왕은 신랑 후보로 프랑스와 포르투갈을 추천을 하며 정치적 도구로 이사벨을 이용하려 했습니다. 그녀는의 뛰어난 정치감각으로 포르투갈왕인 알폰소 5세는 나이가 많고 무능했기에 다른 신랑감을 골랐는데 해상장악력이 강한 아라곤연합왕국의 왕자를 택합니다.  그는 한살 연하의 페르난도 왕자로 영토확장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바로 아라곤에 청혼 서신을 보내고자 페르난도 왕자도 바로 승낙을 합니다. 하지만 포르투갈왕을 밀었던 국왕은 격분을 하고 반대를 하자 이사벨은 왕궁을 도망쳐 바야돌리드 지역으로 피신을 하는데 그 소식을 듣고 페르난도는 상인으로 변장 후 카스티야에 잠입을 합니다. 이렇게 둘은 만나고 1469년 극적으로 결혼을 합니다. 


결혼 5년후 엔리케 국왕이 병으로 사망을 하고 난 뒤 이사벨1세가 카스티야 국왕으로 즉위를 하게 됩니다. 이로써 카스티야의 국왕인 이사벨과 아라곤의 국왕인 페르난도는 두 왕국을 스페인으로 합병하고 공동으로 통치를 합니다. 이렇게 통일의 기초를 마련하게 됩니다. 


하지만 큰 걸림돌이 있었는데 무려 800년간 이슬람이 지배를 한 국토회복 운동인 레콩키스타를 벌이는데 이로써 마지막 남은 이슬람 점령지인 그라나다로 출정을 떠납니다. 8개월이 넘는 격전끝에 그라나다를정복하고 레콩키스타를 완성하게 됩니다. 이슬람의 보압딜 왕이 항복하며 자신들이 세웠던 궁전열쇠를 넘기는데 궁전만은 파괴하지 말아달라고 합니다. 그 궁전이 알람브라궁전입니다. 


이렇게 두 사람의 결혼으로 안으로는 통일을 밖으로는 이슬람세력을 정벌한 이 시대가 1492년으로 이 해는 스페인 역사상 가장 중요한 해입니다. 


이사벨여왕은 이에 안주하지 않고 밖으로는 변방인 스페인을 위해 탐험가를 투자해 인도행 새 무역로를 개척하려 합니다. 그가 바로 콜롬버스입니다. 1492년 드디에 항해를 시작하여 인도와 유럽 사이의 신대륙을 발견하는데 이 곳이 아메리카입니다. 콜럼버스는 그 곳을 인도로 생각하고 그 곳의 사람들을 인디안으라 부르고 서쪽 인도라 하여 서인도제도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콜럼버스가 찾던 향신료는 없었고 그 대신 2차 원정에서 원주민과 금을 싣고 스페인으로 당당히 돌아오는데 바를셀로나에서 금과 노예를 바치는 장면이 바로 타일벽화의 장면입니다. 


콜럼버스의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탐험과 발견의 시대를 연 위대한 탐험가는 맞지만 원주민들을 너무 잔혹하게 죽이고 노예처럼 부리는 식민지 경영의 길을 열어준 인물입니다. 


세비야광장을 둘러보고 세비야 대성당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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