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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끝과 서양의 끝이 만나는 항구도시 터키, 해외휴양지 추천지로 소개합니다. 기독교와 이슬람이 교차한 이 곳에 비잔틴제국부터 오스만제국에 이르는 다양한 문화가 남아있습니다. 위대한 자연의 힘과 역사가 만나는 터키로 떠나 봅니다.


이스탄불

★보스포러스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다리인 보스포러스다리는 총길이 1510m로 1973년 완공되었습니다. 이 곳은 예로부터 아시아와 유럽의 경제와 문화가 교차하던 곳으로 330년부터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 1002년 뒤 이슬람제국 오스만투르크는 이땅을 함락하고 이스탄불로 개명하여 오늘에 이르게 됩니다. 히타이트, 페르시아, 아시리아 그리고 로마, 오스만투르크 등 1만여년에 걸쳐 20여개의 문명이 살아남고 꽃피운 이스탄불은 그래서 인종도 다양합니다. 

히포드롬광장은 오래전 로마전차경기장이 있던 곳입니다. 이 곳 오벨리스크로마황제 테오도시우스가 390년에 이집트의 카르낙신전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하단의 받침돌에는 황제의 업적을 기리는 모습이 부조되어 있습니다. 테오도시우스황제는 기독교를 국교로 확정한 로마의 황제입니다. 콘스탄티누스 7세가 돌을 쌓아 만든 오벨리스크도 있습니다. 원래는 청동으로 장식되었지만 1204년 십자군이 이 도시를 점령했을때 모두 떼어 베니스로 가져갔다고 합니다. 그리스 아폴로 신전에서 가져온 청동 뱀 기둥 머리부분은 오스만투루크 군에의해 파손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전리품과 기념품은 경기장 중앙트랙에 놓여있습니다. 광장에 작고 멋진 건물인 카이저 빌헬름 샘(1901)은 독일황제 빌헬름2세가 이스탄불을 방문한 뒤 독일에서 제작한 후 이 곳에 설치가 되었다고 합니다. 

지하궁전은 532년 유스티니아누스황제가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든 곳이라고 합니다. 물저장소라 하기엔 화려한데 이 곳에 사용된 대리석 기둥이 336개나 됩니다. 특히 뒤집힌 메두사 머리 받침은 최고의 명물입니다.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서 로마, 그리스 권위가 떨어졌기 때문에 이 곳에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물방울 모양을 조각한 기둥도 있으며 물 속에는 고기들도 살고 있습니다. 

★특히 이스탄불에는 많은 로마유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1950년 발굴된 5~6세기 제작된 모자이크박물관도 있습니다. 이 모자이크들은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로마시대 주택터에서 동로마에 만들어진 모자이크가 발견되었는데 주택터라 그런지 서민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있습니다. 색깔있는 돌과 유리를 하나씩 붙여 완성시킨 작품들입니다. 

★413년 비잔틴제국 테오도시우스황제는 콘스탄티노플을 방어하는 3중성벽을 쌓았는데 이를 테오도시우스성벽이라 합니다. 이 성벽은 도시전체를 감싸며 난공불락의 도시로 만드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15세기 오스만의 대포공격에 성벽은 무너지고 1000년 영광의 비잔틴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함락) 메흐메트2세 (1432~1481)는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오스만제국의 술탄입니다. 

아야 소피아 성당은 537년에 지은 당시 세계 최고의 건물인데 오늘날 비잔틴 예술의 최고봉이라는 찬사를 받는 성당입니다. 비잔틴제국의 콘스탄티누스2세떄 처음 세워졌지만 화재로 소실되고 537년 유스티니아누스황제 때 다시 세워졌습니다. 완성 후 천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였습니다. 중앙 돔은 기둥없이 천오백년간 유지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고 난 후 성당은 이슬람사원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이 곳에는 미흐라브라 불리는 메카의 방향을 나타내는 벽감이 있습니다. 결국 이 아야소피아성당은 기독교와 이슬람이 함꼐 공존하는 이색적인 건축물이 되었습니다. 이슬람정복자들은 성당을 이슬람사원으로 바꾸기 위해 모자이크성화벽화에 두꺼운 회칠을 했는데 1930년 어느 날 두껍게 바른 회질이 떨어지고 숨어있던 모자이크가 발견이 되었습니다. 황금색 바탕에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비잔틴 제국의 최고의 모자이크가 완변하게 나타나게 된것입니다. (5세기 제작) 또한 이 곳에는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을 가진 '성모마리아 기둥'이 있어서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유산을 볼 수 있는 이 곳은 1934년부터 모든 종교적 행위는 금지되고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어 지고 있습니다.

★아야소피아성당 건너편 이스탄불의 상징인 블루모스크가 있습니다. 1616년 완공된 오스만제국을 대표하는 건축물입니다. 아야소피아 성당보다 ㄷ 크고 웅장한 모스크로 만들고자했던 마흐메드1세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내부는 2만장 이상의 타일을 붙여 장식한 블루 모스크벽이 있고 첨탑은 6개나 있는 화려한 모습입니다. 

★이스탄불은 비잔틴시대부터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터키에서 가장 큰 실내시장인 랜드바자르로 가봅니다. 60여개의 통로에 5000여개의 상점들이 모여있습니다.

★보스포러스해협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는 15~19세기까지 오스만왕조의 톱카프궁전이 있습니다. 이 곳은 400년동안 오스만제국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가 된 곳으로 강력한 왕조에 의해 세워진 궁전은 화려한 모습입니다. 황금색 천장과 섬세한 부조로 꾸며진 건물하나하나가 모두 예술작품입니다. 로마시대 건축물을 재활용한 돌기둥 등 로마의 건축물과 오스만 건축술이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건물이 되었습니다. 조금은 부자연스럽지만 동서양의 혼합된 미가 돋보이는 곳입니다. 모자이크자갈을 따라가면 하렘이 나옵니다. 하렘은 술탄의 여자들이 살던 궁전입니다. 300여개의 방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술탄이 드나드는 방은 크고 화려합니다. 왕의 여인과 경비를 하는 흑인 환관, 술탄의 자식들이 살던 궁이었지만 하렘은 금남의 집이였습니다. 오스만제국의 술탄은 강력한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형제들을 모두 살해했는데 이 궁전을 지은 메흐메드2세도 왕좌에 오른 후 모든 형제들을 죽였다고 합니다. 자식을 살리기 위한 여인들의 치열한 암투는 이 궁에서의 일상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이 곳에서는 하렘의 목욕탕도 볼 수 있는데 대리석의 욕조와 황금장식이 많이 있습니다. 이 곳에는 톱카프궁전에서 쓰던 물건들을 전시한 왕궁박물관이 있습니다. 당대 최고의 장인들이 만든 은세공품들이 많이 있는데 정교하고 아름답습니다. 

★오스만제국은 20세기들어 멸망하며 지금의 이스탄불은 수도로서의 역할을 끝마치게 됩니다. 비잔티움에서 콘스탄티노플로 그리고 이스탄불로 이름이 바뀔때마다 서로 다른 중요한 역할을 맡아 왔던 이 도시는 여전히 중요한 항구도시입니다.


에페소

사도바울의 복음이 퍼졌다고 알려진 에페소로 향합니다. 화려한 건물들은 지금도 에페소를 대표적인 제국시대도시로 손꼽고 있습니다. 기원전 1000년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고대도시 에페소는 터케에서 가장 대표적인 지중해 연안의 고대도시입니다. 기원전 7세기 그리스의 식민도시로 발전을 합니다. 한 떄 이 곳의 인구가 25만명으로 세계에서 몇번 째안가는 거대 도시였습니다. 먼저 에페소의 상점거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마차가 다니는 거리와 보도가 분리되어 있습니다. 보도는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AD138년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바쳐진 헬레니즘양식의 신전인 하드리아누스신전을 만날 수 있는데 운명의 여신 테티스의 부조가 새겨져 있습니다. 20만 권의 장서를 소장 했던 세계 3대 도서관 중 하나였던 셀수스도서관이 있습니다. 고대 에페소는 수상무역을 통한 상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해 도서관, 극장, 목욕탕 같은 시설이 있었습니다. 거리는 대리석으로 포장된 마블스트리리트였고 미성년자 출입금지를 알리는 광고도 새겨져 있기도 합니다. 공중화장실의 모습도 색다릅니다. 2세기 25000명을 수용했던 서아시아 최대로마

극장인 에페소 원형극장이 있습니다. 기원전 7세기 부터 번영했던 이 도시에 남아있는 유적은 대부분 로마시대 건축물입니다.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이 바로 이 곳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현재는 미니아 투르크 공원에 그 모형이 있습니다. 신전은 401년 파괴되어 흔적만 남아있습니다. 에페소는 기독교 역사에서도 중요한 도시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곳에서 전도를 했고 기독교가 공인되기전인 1세기에 이미 교회가 있었습니다. 성경의 사도행전과 요한계시록에 이 도시는 비중있게 등장합니다.


파묵칼레와 히에라폴리스

온천수에 함유된 석회성분이 몇 세기를 거치면서 아름답고 기이한 장면을 만들어 내는데 놀라운 자연의 신비와 찬란한 인류의 유산이 남아있는 곳이자 로마황제들이 즐겨찾던 곳이 바로 이 파묵칼레와 히에라폴리스입니다. 파묵칼레는 터키어로 목화의 성이란 의미로 터키의 대표적인 온천지대입니다. 땅 속에서 솟는 35도씨의 온천수가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류마티즘, 관절염, 피부병과 같은 질환에도 효과적이라고 하는데 유적의 보호를 위해 일부만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어 있다고 합니다. 산 위에는 고대유적이 잠겨있는 풀장이 있는데 이 곳은 유료입장풀장입니다. 온천 뒤쪽에는 성스러운 고대도시인 히에라폴리스가 있습니다. 기원전 130년에 로마의 기획도시였던 이 곳은 도시 중앙에 로마의 길 카르도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북쪽 끝에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개선문이 있는데 104년경 건립된 것입니다. 1957년 이탈리아 고고학자들이 이 밑의 흙을 긁어내 완변하게 포장된 로마의 길 카르도를 발굴합니다. 카르도 대로의 상가흔적도 볼 수 있고 1KM를 이어진 열주대로의 원주기둥을 보면 이 고대도시의 규모를 짐작케합니다. 로마에서부터 11세기 룸셀주크왕조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이 곳은 번영을 했습니다. 그러나 거듭된 지진은 많은 피해를 주게 됩니다. 결국 11세기 후반 투르크족에 의해 멸망을 하고 1354년 이 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 곳에서 비잔틴 시대에 지은 교회도 발견이 되었고 200년경 산의 경사면을 이용해 건설된 반원형로마극장도 있습니다. 열주,장식용창,문을 배치해 무대를 장식을 해두었습니다. 50단에 이르는 관객석 중앙엔 황제를 위한 좌석도 있습니다. 온천욕을 즐겼던 로마의 황제들도 즐겨 찾은 곳이었습니다. 각종 공연도 펼쳐졌지만 무대 밑에서 대리석 판에 조각된 판이 발견이 되었는데 격투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봐서 격투장으로도 이용되었던 것같습니다. 서쪽문을 나서면 히에라폴리스 공동묘지도 있는데 여러민족의 장례풍습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곳이며 1200여개의 석관이 발견된 서아시아 가장 큰 공동묘지 유적입니다. 니케아인의 무덤을 보면 하늘의 신과 함꼐 하고픈 니케아인의 특이한 장례풍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와 비슷한 흙을 덮은 분표 형태에 중앙에 남근석을 박아 놓은 묘도 볼 수 있습니다. 히에라폴리스 박물관에는 로마 귀족의 석관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지역에 고대도시가 들어서게 된 것은 지리적 여건과 휴양도시로서의 조건을 모두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카파도키아

카파도키아는 지정학적 요충지로 무수한 제국이 거쳐갔던 곳으로 해발고도 1000M이상에 신비한 지형이 가득한 곳입니다. 위대한 자연과 인간의 역사가 만나는 곳으로 터키 동부 아나톨리아 고원에 위치해 있으며 오랜 세월 풍화와 침식작용이 반복되면서 현재의 기암괴석들이 만들어 졌습니다. 요정의 굴뚝이라고 불리는 버섯모양 바위들은 열기구들타고 하늘에서 바라보면 정말 장관입니다. 약 300만년전 인근 3개의 화산이 폭발하면서 온통 화산재로 뒤덮였는데 첫 벗째 화산폭발로 응회암이 형성이 되고 좀 더 단단한 현무암층이 그 위를 덮게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독특한 모양의 버섯바위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카파도키아 주거 동굴군이 있는데 굴을 파서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응회암은 부드러워 간단한 도구로도 굴을 팔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서 로마의 박해를 피해 집단으로 이주해 온 초기의 기독교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는데 동굴교회가 모여 있어서 이 곳을 괴뢰메 야외 박물관이라고 합니다. 어둠의 교회로 불리는 카란리크 킬리세와 같은 곳처럼 이들은 동굴을 파서 기둥도 만들고 일반교호와 같은 돔도 만들었습니다. 화려한 프레스코화로 벽과 천장도 장식을 합니다. 하지만 성화들이 많이 훼손되어 있는데 이는 8세기 비잔틴 제국의 성상파괴운동으로 이슬람세력에 의해 훼손이 된 것입니다. 일부는 벽이 무너져 내부가 보이는 암흑교회도 있습니다. 교회는 4~11세기까지 집중적으로 세워지고 이후 이슬람세력이 이 땅을 점령하며 버려지게 됩니다. 사과교회로 불리는 엘말르 킬리세는 이 곳에서 가장 큰 교회입니다. 바쿠르의 교회라 불리는 코칼리 킬리세의 벽화들은 비잔틴 예술의 최고걸작이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정교하게 바위를 조각해 만든 아치와 돔도 볼 수 있습니다. 성 바르바라교회(바르바라 킬리세)는 8세기 성상파괴운동이 벌어지며 성화는 단순하게 벽을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안에서는 묘지도 함께 발견이 되었습니다. 카파도키아는 실크로드가 통과하는 길목이자 지정학적 요충지였기 떄문에 이민족들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지하도시입니다. 깊은 우물이라는 뜻의 지하도시 데린쿠유는 약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곳입니다. 처음엔 히타이트인들에 의해 만들어 졌지만 이 후엔 로마인의 박해를 피해 초기 기독교인들이 이 곳으로 들어왔습니다. 좁은 길을 따라 개미굴처럼 지하 120M까지 내려가는데 현재 공개는 지하 55M지점 약 8층까지 입니다. 데린쿠유의 돌문은 적의 침입을 대비해서 만든 돌문으로 그 안에는 동굴집들이 있고 현재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일반 집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현재 터키정부는 붕괴 위험때문에 이주를 권장하고 있지만 조상대대로 이 곳에서 살아왔던 이들은 쉽게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위산을 파서 만든 성당과 벽화들, 이 것들은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귀중한 유산입니다. 


넴루트다이

아나톨리아동부 안티트로스 산맥에는 자신이 신들과 버금간다고 믿었던 왕이 있었는데 그는 신들이 사는 산 정상에 자신의 무덤을 건설합니다. 터키 동부 산악지대, 해발 2150M  바위투성이 고원지대에 넴루트다이가 있습니다. 기원전 1세기 콤마케네의 왕 안티오코스 1세가 자신이 묻힐 거대한 무덤을 산 정상에 만들었는데 산 정상에 50M의 자갈을 쌓아 만들었습니다. 무덤을 파면 돌이 흘러내려 도굴을 할 수 없게 만든 것입니다. 둥굴게 자갈을 쌓아 무덤을 만들고 동,서에 신과 같이 있는 모습을 돌로 조각해 테라스를 만들었습니다.  이들 석상은 작은 돌을 쌓아 세공을 했는데 결국 잦은 지진으로 머리는 떨어져 나갔습니다. 두상은 2M정도 되는데 얼굴은 그리스인들 닮았고 모자는 페르시아양식입니다. 기원전 1세기에는 그리스와 오리엔트 문화의 융합으로 탄생한 헬레니즘문화가 유행을 합니다. "나는 왕국의 수호자였다. 제우스신과 함꼐 영원한 휴식을 할 것이다."라는  문구를 세겨넣었습니다. 또한 사자석상과 독수리 석상의 수호신들과 제우스와 조로아스터 교의 창조주를 혼합한 산안 재우스 석상이 있습니다. 콤마게네의 여신 티케 석상도 있습니다. 콤마게네왕국은 동맹이나 외교술로 독립을 유지했고 통상활동으로 번영을 누렸기에 이런 거대한 무덤을 완성 할 수 있었습니다. 동쪽테라스에서 서쪽테라스로 가는 길에는 일렬로 서있는 석판을 볼 수 있는데 지금은 모두 넘어져 있으나 신들과 왕의 모습들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원판을 든 헤라클레스의 모습과 , 왕의 점성술사라는 석판이 있는데 사자자리위로 수성,목성,화성이 일직선상에 있는데 서기 62년 7월 7일 로마가 이 곳을 침공한 해였습니다. 헤라클레스와 악수하는 안티오코스 1세의 조각상 등 콤마케네왕국이 있던 곳의 유적지를 보면 신과 같은 절대권력을 갖고자 함이 보여집니다. 자신이 하늘의 신과 같다던 왕은 지금은 거대한 무덤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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