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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대표 진상품은 귤과 말이었습니다.


제주도는 산, 오름, 평지가 어우러져 말 사육 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진상에 필요한 말은 각 목장에서 징발하여 제주목사가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진상을 하게 됩니다.



조선시대 왕실 진상품이었던 귀한 과일 귤을 왕이 학자와 유생들에게 종종 하사하기도 했습니다고 합니다.

황감제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들의 사기를 높이고 학문을 권장하기 위해 제주도에서 진상된 귤을 유생에게 나눠주고 실시한 과거를 말합니다.

역사 기록에 남겨져 있는 귤에대한  글입니다.

<숙종실록> 숙종 25년 (16990 1월 7일
근래 감귤을 반사할 적에 유생들이 앞을 다투어 탈취하기 때문에 분란이 일고 있는데 (중략) 명색이 선비로서 임금의 하사품이 중한 줄을 모르니 더욱 한심한 일이다.

<연산군 일기> 연산 8년 (1502) 3월 11일 
귤과 유감은 비록 이미 철이 지났지만 따서 저장한 것이 있으면 봉하여 올리고 나무에 달린 것이 있으면 가지에 붙어 있는 채로 올리라

해마다 7, 8월이면 목사는 민가를 순찰하며 귤의 열매를 하나씩 표시하여 장부어 적어 두자....

<세조실록> 세조 1년 (1455) 12월25일 
백성들은 나무 심기를 즐겨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나무를 뽑아버리기 까지 했다.

<영조실록> 영조 24년(1748) 1월10일 
듣건대 감귤의 진공 또한 폐단이 있어 여항 사이에 이 나무가 나면 반드시 끓는 물을 부어 죽인다고 하니.... 

진상이 힘들어 백성들은 귤나무를 키우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귤에 대한 진상은 조선을 넘어 삼국시대에도 기록이 나옵니다. 귤은 고려 왕실에서도 귀히 여겼던 과일입니다.

고려사 문종 6년 (1502) 3월
탐라에서 매 년 진상하는 귤의 수량을 1백포로 늘리도록 고쳐 정한다.

<고려사 열전> 중
(장운이) 팔관회가 열렸을 때 오봉루로 올라가서 상에 놓인 귤과 유자를 손으로 집어 먹는 등예의에 어긋난 짓을 많이 하자 왕이 불쾌하게 여겨 파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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