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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전쟁 이유  
갈등의 역사



이스라엘에는 종교가 유대교, 무슬림, 기독교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단군의 후손이듯 이 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아브라함은 오늘날 이라크 근처에 살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동을 해서 정착한 땅이 이 곳 '가나안'입니다. 


요르단으로 넘어온 후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야곱을 낳았습니다. 그 당시 흉년으로 먹을 양식이 부족하자 굶주렸던 사람들은 다시 좋은 땅을 찾아 이집트로 이동을 한 후 이집트에서 정착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인들이 유대인을 탄압을 하자 그들의 후손인 모세는 사람들과 함께 이집트를 탈출합니다. 이것을 출애굽기(이집트탈출기)라 합니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모세는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있는 가나안 땅에 다시 정착하여 잘 살고 있을 무렵 로마제국이 침략을 했는데 로마의 다신교와 유대인의 일신교가 종교적 갈등을 빚게 되고 로마가 유대인의 관습과 종교를 인정하지 않고 황제까지 섬기라고 하자 유대인들은 여러차례 반란을 일으키며 저항을 하지만 로마는 더욱 강력한 핍박을 가하고 결국 유대인을 추방을 합니다. 이로써 유대인들은 전세계로 흩어져서 2000년을 떠도는데 이를 '디아스포라' 라고 합니다.


그 후 2000여년을 떠돌며 살던 유대인들은온갖 핍박과 굴욕에도 유대교 신앙을 지켜왔고 불굴의 의지와 불타는 학구열로 전 세계 곳곳에서 리더로 성장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1차 대전이 벌어질 무렵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던 분위기가 일어났는데 높은 경제력과 정치력, 기술력을 바탕으로 당시 세계최강대국이었던 영국의 힘을 빌리려는 전략을 세우고 1차 대전 중인 영국을 지원합니다. 원래 살던 땅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바로 시온주의입니다. 시온주의는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은 한 곳으로 불러모으며 유대인 국가 건설을 위한 민족주의 운동입니다. 


시온주의에 결정적 역할을 한 선언이 있었는데 바로 <밸포어선언>입니다.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영국은 1차세계대전 중 위임통치중이였는데 외교장관 밸포어가 유대인 국가건설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선언하고 지지하면서 비롯되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이 이중성을 보였는데 1차세계대전에 이기려면 아랍국가들에게 잘 보일 필요성이 있어서 이스라엘 독립지지선언 불과 1년 전 같은 땅을 아랍인들에게 독립국가건설을 약속한것 입니다. 이렇게 양쪽으로 약속을 한 것이 아랍인들의 갈등의 씨앗이 됩니다.



이 후 2차세계대전 (1939~1945)이 끝난 후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독립을 선언합니다. 1947년 이스라엘 초대총리 벤구리온은 UN의 <팔레스타인 분할안>에 따라 이스라엘에 원래살던 사람들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고 부르는데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이들은 쫒겨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주변 아랍국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슬람의 형제로 가만히 볼 수 없어서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등 이스라엘을 둘러싼 아랍국들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을 합니다.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포한 그 다음 날 공격을 하는데  이것이 1차 중동전쟁입니다.

1947년도 처음 얘기했을 때는 분쟁지역이다보니 예루살렘은 un에서 관리를 하겠다고 했으나 제 1차 중동전쟁이 나고 난 다음에 요르단이 예루살렘의 동쪽 일부를 차지를 합니다. 


하지만 20년 후 1967년 제 3차 중동전쟁이있은 후에는 이스라엘이 다시 예루살렘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자국의 수도로 선포를 했지만 유엔은 동 예루살렘을 불법점령으로 규정을 하면서 동예루살렘은 국제법상 어느나라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사관도 예루살렘에 있을 수 없는 상황이고 국제사회에서는 예루살렘이 수도가 아닌 것입니다. 

1차 중동전쟁 이 후 팔레스타인 땅을 놓고 4차례에 걸쳐 또 중동전쟁이 벌어집니다. 

※ 중동전쟁
1948 ~ 1973년까지 25년간 이스라엘과 아랍연합과의 치열한 전쟁을 말합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를 하자 2002년부터 원래살던 팔레스타인 이들은 자치지구로 따로 분리를 해서 가두며 분리 장벽을 건설합니다. 이스라엘안에 두개의 자치지구 서안지구가자지구로 구분하여 팔레스타인들을 가둡니다. 


예수 탄생지인 베들레헴은 서안지구안에 위치를 해서 서안지구는 비교적 출입이 자유로운데 가자지구는 출입이 불가능합니다.  반이스라엘저항단체이자 정당인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을 하면서 테러 등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2007년 이후 봉쇄정책은 더 강화가 됩니다. 이 곳은 들어갈 수도 나올수도 없는 땅입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에 접한 가자지구는 서울의 절반크기로 인구는 170만명으로 가자지구사람들은 이집트로 수백개의 땅굴을 내고 식료품과 연료를 들여오는 열악한 삶을 이어왔습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하마스의 테러를 막기위해 가자지구를 봉쇄를 하고 하마스입장에서는 이스라엘의 봉쇄에 맞서 땅굴을 파 자원을 공급합니다. 문제는 팔레스타인들은 밖으로 나오지 못합니다. 그렇다보니 팔레스타인도 이산가족이 생깁니다.


그러던 어느날 2017년 트럼프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선포를 하고 미 대사관의 문을 열었습니다. 이 날 팔레스타인에서는 반미, 반이스라엘 시위가 거세졌습니다. 강한 반발이 이어지면서 종교적 성지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싸웠습니다. 1995년 미국에서 이미 이스라엘 대사관법이 통과가 되었지만 클린턴, 부시, 오바마는 실행을 미루고 있었는데 트럼프가 선언을 해버린것입니다.이스라엘입장에서는 자국의 주민들이 테러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위협을 받게되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을 공격할 수 밖에 없다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피의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의견은 분분한데 지금은 강경파가 집권 중이다보니 전쟁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은 테러의 장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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